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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라는 용어 사용의 남용, 과연 옳은가? 요즘 한국 정치에서 ‘극우’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인다. 이승만의 건국을 평가하면 극우. 박정희의 산업화를 평가하면 극우. 한미동맹을 중시하면 극우.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면 극우. 보수 대통령의 공과를 균형 있게 보자고 해도 극우. 과연 이것이 맞는가? 아니다. 보수는 극우가 아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안보, 전통, 책임을 중시하는 정치 노선이다. 극우는 다르다. 극우는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와 가치를 부정하고, 권위주의와 배타주의를 앞세우며, 폭력이나 헌정질서 파괴까지 정당화할 때 성립한다. 즉, 보수 대통령의 공을 평가하는 것은 극우가 아니다. 다만 독재, 쿠데타, 국가폭력, 선거부정, 계엄, 헌정파괴까지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극우적 위험으로 갈 수 있다. 진보도 극좌가 아니다. 복지, 평등, 노동권,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정상적인 진보 정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폭력혁명이나 일당독재, 계급독재, 북한식 사회주의, 주체사상, 반헌정 노선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극좌다. 한국의 NL계열은 민족해방, 즉 National Liberation을 뜻하며 반미·자주·통일을 강조한 운동권 흐름이었다. 이 자체만으로 모든 NL 출신을 극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NL 내부에서 북한의 주체사상과 남한혁명론을 수용한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있다. 북한식 사회주의 지향,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 혁명노선, 친북 성향과 결합된 흐름은 극좌 또는 반헌정 좌익 극단주의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한국 운동권 역사에서 이러한 주사파가 NL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류적 위치를 차지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경쟁하면 보수와 진보다. 자유민주주의를 폭력과 권위주의 체제로 대체하려 하면 극우와 극좌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이 기준이 자주 뒤집힌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반공, 산업화,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말하면 ‘극우’라는 딱지가 붙는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했던 좌익 혁명노선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공정한 역사 인식이 아니다. 정확한 정치 언어도 아니다. 정치적 반대자를 비판할 수는 있다. 보수 대통령의 과오를 비판할 수도 있다. 박정희의 권위주의, 전두환의 국가폭력, 보수 정권의 실책도 당연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공을 말하는 것 자체를 극우로 낙인찍는 것은 지적 폭력이다. 역사는 진영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용어는 정확해야 한다. 극우와 극좌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욕설이 아니다. 극우는 보수가 아니다. 극좌는 진보가 아니다. 정상적인 보수와 진보는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경쟁한다. 극단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한다. 따라서 ‘극우’라는 말은 신중하게 써야 한다. 정치적 낙인을 위해 남용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낙인이 아니라 기준이다. 진영논리가 아니라 사실이다.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정확한 언어다. #극우프레임 #주사파 #NL #주체사상파 #정치언어 #자유민주주의 #보수진보 #정석희의시사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