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모친의 눈이 향한 곳이 '부동산'이었다. 당시 말로는 '복부인'이었다. 1970년대 이후 가사에 여유가 생긴 주부들 가운데 부업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투자 규모가 커지고 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세상은 '복부인'이라 불렀다. 모친도 그 흐름에 있었다. 월세방은 전셋집이 되었고, 전셋집은 29평 아파트가 되었다. 다시 50평대 아파트로 옮겼고, 지금의 송리단길이 된 송파동에는 2층 주택과 4층 상가를 지어 살았다. 그리고 연대보증의 후폭풍으로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나는 유년과 소년, 청년의 초입을 그곳에서 보냈다. 잠실이 고향처럼 남은 이유다. 지하철이 지나고, 지금의 롯데월드가 들어서기 전부터 석촌호수에는 복합문화단지 계획이 있었다. 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서고 관련 시설이 잇달아 조성되면서 변두리였던 동네는 전국이 아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름에 '잠실'이 들어간 학교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