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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정선거론 #선관위 #참정권 #선거제도 🗳️🔍 ‘광장의 음모론’ 어떻게 답해야 하나 지난주 금요일 찾은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앞 광장에선 부실선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부정선거론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사태 초기 참정권 훼손을 규탄하던 청년들의 목소리는 점점 음모론과 정치적 구호에 덮이는 양상이다. 게시판에는 “참정권 침해 메시지에 집중해달라” “질서를 지켜달라”는 안내와 “윤석열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버렸다” “중국 공산당은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 같은 구호가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누군가 명함을 주길래 받았더니 ‘8·15 국민저항권대회’ 참가를 독려하는 전광훈 목사 명의의 전단이었다. 일부 참가자들의 극우적 행태에 광장은 오염되고 있지만 공권력은 몸을 사리고 있다. 시위대가 유소년 선수들의 가방을 뒤지고, 기자들을 폭행해도 경찰은 속수무책이다. 필요한 물품만 반출하겠다는 체육단체의 절박한 시도조차 단 한 명의 막무가내 저지에 무산됐다. 광장에는 국가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터무니없고 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들을 계몽하거나 매도한들 한계가 있을 듯하다. 이성이나 논리의 문제로 풀기에는 이들의 확신이 너무 뿌리 깊다는 것을 광장은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음모론이 자라날 음지를 기술적·제도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당연히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라야 할 곳은 선거관리위원회다. 선관위는 그간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성역 뒤에 숨어 외부 감시와 검증에 소극적이었고, 끝내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선관위 개혁의 핵심은 폐쇄성을 깨서 선거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러나 국회나 행정부의 직접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시비를 부를 수 있다. 정치권과 학계, 보안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 외부 감시·검증 기구를 두는 것이 현실적이다.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지점마다 과잉이라 싶을 정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시행 중인 사전투표 우편물 이송 참관, 차량 GPS 추적, 개표 당일의 전수 수검표(手檢票)는 유권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공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수송 차량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수검표 과정 역시 국민 누구나 온라인으로 지켜볼 수 있게 하는 식이다. 개표 프로그램 역시 외부 전문가들이 사전에 검증하고, 디지털 지문을 이용해 선거 당일 사용된 프로그램이 검증된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거 후 일부 투표구를 무작위 추첨해 사람의 손으로 다시 세어보는 ‘사후 표본 수개표 감사’ 역시 도입할 만하다. 핵심은 유권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증 절차를 늘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아날로그적 요소’가 강화될 수도 있다. 21세기 디지털 기술 강국 한국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난센스로 보일 법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서만큼은 효율성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다. 방향 잃은 효율 추구가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보여줬다. 아무리 똑똑한 선거 시스템일지라도 유권자가 믿지 못한다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도화선이 될 뿐이다. 개표 결과를 몇 시간 일찍 확인하는 편리함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번거롭더라도 누구나 납득할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갈등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강력한 보안이 디지털 사용자의 불편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결국 아날로그적 가시성과 디지털적 효율성의 조화가 관건이다. 어떤 방법을 쓰든 음모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맹목적 의심이 자라나는 토양 자체를 줄이는 일이다. “믿어 달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조작하려 해도 당신들이 먼저 알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 기술적 완벽성보다 중요한 것은 절차의 가시성이다. 유권자가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야 결과도 수용된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