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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롱의 대상이 5·18이었다면 어땠을까? [‘민주주의 조롱‘의 이중잣대] 개그맨 이수지의 ’재선거 요구 시민 희화화‘ 논란을 두고 일각에서는 ”단순한 예능적 소재일 뿐인데 과도한 비판이 아니냐“라며 옹호 섞인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와 언론의 태도는 명백한 ’선택적 분노‘이자 이중잣대다. 사안의 본질을 직시하기 위해 한 가지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 만약 이수지가 조롱하고 희화화한 대상이 ’올림픽공원 재선거 요구‘가 아니라 ’5·18‘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 사회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분노로 뒤덮였을 것이다. 1. 언론의 즉각적인 ’낙인찍기‘와 전방위적 조리돌림. 동일한 수위의 조롱이었을지라도 대상이 5·18이었다면, 주요 언론사(JTBC, MBC 등)들은 즉각 해당 코미디와 제작진에게 ’극우‘ 혹은 ’혐오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일 메인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일주일 내내 이 사안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사회적 매장 여론을 주도했을 것이 자명하다. 반면, 주권 침해에 항거하는 현재의 시민들을 조롱한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단순 해프닝으로 축소 보도하고 있다. 2. 정권 및 정치권의 즉각적인 반응과 엄단 의지. 정치권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 자리에서조차 ”아무리 개그 소재라지만,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는 것“이라며 단호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엄단을 촉구했을 것이다.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행위라며 여야 할 것 없이 일제히 규탄 성명을 냈을 것이 눈에 선하다. 3. ’민주주의‘라는 본질은 같은데, 왜 대접은 다른가? 5·18이나, 무소불위 선관위의 부정박탈당한 투표권을 되찾으려는 최근의 재선거 요구 시위나, ”시민들이 민주주의적 권리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본질적 가치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으로 대접받고, 다른 한쪽은 대중 매체에서 ’진상 민원인의 떼쓰기 소음‘ 정도로 비하되어도 조용히 묻히는 이 현실은 참담하다. 결국 이번 이수지 사태가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그의 잘못이 가볍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와 언론, 그리고 정치권이 ’과거의 정립된 역사‘ 뒤에 숨어 안전한 분노만을 선택적으로 표출하고, ’현재 진행형인 주권 침해‘에는 비겁하게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조롱한 죄의 무게는 대상이 누구든 결코 가벼울 수 없다. 4. 좌파세력이 뒤늦게, 이제와서 배재고 사건을 ’표현의 자유‘라는 틀로 포장하려 하지만, 정작 사안이 터졌을 때 우리 사회가 미성년자 고등학생들에게 가한 조치는 잔혹할 정도로 조직적이고 즉각적이었다. 대대적인 언론 보도와 마녀사냥: 공중파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마치 천인공노할 범죄라도 일어난 듯 연일 메인 뉴스로 이 사안을 송출하며 고등학생들을 전 국민적 조리돌림의 무대 위에 올렸다. 법적 단죄의 칼날 (경찰 수사): 이들의 조롱 섞인 응원 구호를 두고 실제 경찰 수사기관에 진정이 접수되어 고등학생들이 ’형사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체육계 사상 유례없는 중징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들에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로 인해 열심히 땀 흘려 온 청룡기 대회에서 즉각 몰수패 처리를 당하는 등 선수 생명과 진학의 길목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오직 국가적·제도적 역량을 총동원한 무자비한 징계와 수사, 그리고 조리돌림만이 있었을 뿐이다. 결론: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우파진영에서 일관 된 주장이었다. 우파들이 배재고엔 표현의 자유를 외치고 이수지의 재선거 구호 조롱엔 가만있지 않는 이유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선택적 분노’ ’선택적 잣대‘ ‘선택적 민주주의‘에 대한 분노임을 알아야 한다. 2026. 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