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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요약6/3~6/23 · 20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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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蠶室). 누에를 치는 방. 나는 그 뜻을 처음 알았을 때의 낯선 감각을 아직 기억한다. 조선 시대 국가가 운영한 잠실은 한성부와 근교에 세

잠실(蠶室). 누에를 치는 방. 나는 그 뜻을 처음 알았을 때의 낯선 감각을 아직 기억한다. 조선 시대 국가가 운영한 잠실은 한성부와 근교에 세 곳이 있었다. 서대문구 신촌의 서잠실, 잠원동의 신잠실, 그리고 송파의 동잠실이었다. 명주를 만드는 누에는 하늘이 내린 벌레라는 뜻에서 천충(天蟲)이라 불리며 신성하게 여겨졌다. 조선은 양잠을 국가적으로 장려했고, 왕실이 이를 직접 관장했다. 잠실도회(蠶室都會)라는 국립 양잠소가 이곳에 설치되었고, 각 지역에서 생산된 실은 승정원에 바쳐졌다. 원래 잠실은 한강 범람원 위에 형성된 부리도(浮里島)였다. 조선은 이 섬에 뽕밭을 조성하고 잠실을 두었다. 섬이었다. 잠실은 섬이었다. 도성의 동쪽, 한강 한가운데에 뽕잎 냄새를 품고 떠 있던 섬이었다. 1971년 송파강이 매립되며 2.5㎢ 규모의 육지가 되었고, 1973년에는 주변 지역을 포함한 11.2㎢ 부지에 잠실아파트와 잠실종합운동장을 건설하는 종합개발계획이 추진되었다.

지방분들을 위한 잠실 소개. 잠실(蠶室)은 '누에를 쳐서 실을 뽑는 방'이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기르던 국립 양잠소를 두었던 것에서 유래. 당시 서울 근교에 국가가 운영하던 대표적인 잠실이 세 곳 있었는데.동잠실(東蠶室): 현재의 송파구 잠실동 일대서잠실(西蠶室): 현재의 서대문구 연희동(연세대학교) 일대신잠실(新蠶室): 현재의 서초구 잠원동 일대. 이곳 동잠실 지역에서 일하던 관리와 양잠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잠실리'가 되었고, 이것이 '잠실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뽕나무밭이자 한강의 섬이었던 잠실이 오늘날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 조선 시대의 잠실은 본래 한강 본류와 지류(송파강) 사이에 위치한 비옥한 모래섬이었습니다.1971년 한강 공유수면 매립 사업을 통해 남쪽 물길(송파강)을 메우면서 한강 이남의 육지와 완전히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이때 강을 메우고 남은 물길이 현재의 석촌호수가 되었습니다.

기록의 끝